험난했던 로마 캔들 시리즈 제작기 Ep.3

공장장 그레이
2020년 1월 12일

06. 무서워할 거 없어. 우리도 부딪혀보자.

중국 춘절이 막 끝난 직후였기에 미팅을 하기엔 최적의 시간이었다. 이미 광동성에 위치한 13곳의 업체들에게 이메일과 알리바바, 메이드 인 차이나 등의 메신저를 통해서 컨택을 진행했고 그 중 답장을 받고 미팅 확답을 받은 7곳의 업체와의 만남을 위해서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1일 동안의 출장 여정표

지금 돌아보면 정말 무식하게 잘하고 왔다. 위챗으로 주고 받은 한 두통의 연락만 믿고 중국 땅 한복판을 여기저기 헤짚고 다녔으니까.(약간은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루하루 일정은 계획표와 거의 동일하게 움직였던 것 같다. 매일 아침에 호텔에서 나오면 지하철을 이용해서 공장 근처로 이동했고 근처에서 연락을 주고 받은 담당자의 차로 공장으로 이동했었는데 정말 다행히도 대부분의 담당자들이 잠수타지않고 잘 데리러 나와줬었다.(한 군데만 빼고..)

실제 방문했던 공장에서 촬영한 이미지

중국의 섹스토이 공장들은 컸다. 정말 매우 컸다. 그동안 한국에서 찾아다니고 방문했던 업체들과는 규모에서 거의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랄까.

그리고 더 놀랐던 건 체계화된 생산 프로세스의 존재 여부와 엄격한 QC(Quality Control)였는데 오나홀을 생산하는 부서가 따로 있고 생산 뒤 후가공-열로 모난 부분을 녹이거나 흠이 있는 부분을 수정하는 일-부서가 따로 있고 최종적으로 퀄리티를 더블 체크하는 부서가 따로 있었다. 각 부서별로 노동자 수가 최소 10명 이상이었는데 그 당시 한국 공장만 봐왔던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물론 이제는 더 큰 중국 공장을 많이 다녀서 그런지 위의 이미지에 있는 공장 규모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공장의 생산라인과 기존에 생산하는 제품들을 하나하나 체크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면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제품의 스펙과 기존에 한국에서 생산한 샘플을 보여주며 원하는 요청 사항들을 전달한 뒤 디테일한 견적을 주고 받는 과정을 거쳤다.

07. 请多多关照.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하루의 일정을 끝내면 사전에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평가해서 채점표를 정리했다. 아무래도 7곳의 업체와 미팅을 하다보면 업체들을 비교하고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스코어링 가이드가 필요했고, 사전에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채점을 하게 되면 좀 더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으리라는 이유였다. 그렇게 미팅 내용 써머리와 스코어링을 통해 업체에 대한 평가가 완료되면 매일 저녁에 미팅 써머리를 해서 슬랙에 공유하곤 했다.

7곳의 업체를 사전에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평가한 채점표 – 60점 만점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는 미팅 써머리 공유

그렇게 11일간의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뒤 평가 상위 3군데 업체에 샘플 제작을 의뢰했다. 당연 1등 업체를 통해 제작을 진행하는게 가장 빠르게 제작하는 방법이었지만 우린 리스크 테이킹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2번의 실수는 용납할 수 없었기에.

상위 3군데 업체 중 1곳은 미팅 때 가장 저렴한 제작 금액을 제시했었는데 샘플 제작을 의뢰하니 갑자기 금액을 올려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이 금액엔 할 수 없다나 뭐라나.(바로 환불 받았다. 나중에 제작들어가서도 딴소리 할 것 같잖아…)

샘플 제작을 의뢰하고 약 40일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금형 제작에 소요되는 기간 + 샘플 생산 + 산넘고 바다건너 오는 배송 기간임을 생각하면 나름 빠르게 제작해준 것 같다.) 두 곳의 샘플을 받은 우리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동안 국내에서 그렇게 잡히지 않던 제품의 완성도가 정말 말도 안되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누가 중국은 제품 대충 만든다고 그랬어)

그렇게 우리는 최종 업체를 결정했고(결국 1등 업체가 1등했다.) 본 생산을 의뢰했다. 이때까진 바로 출시할 수 있을 줄 알았다.

08. 확실히 완성도’는’ 좋아졌네.

그렇게 벚꽃이 피기 시작할 때쯤 우리는 중국에서 생산한 2차 샘플을 받아볼 수 있었다. 제품의 완성도는 정말 좋았다. 내부 패턴에 갈라진 곳 하나없이 깔끔하게 정형되어 있었으니까.

단 거기까지. 경도도 색상도 내가 지시했던 것과는 너무 차이가 있었다. 한국 공장이라면 이럴 때 바로 공장에 뛰어가서 배합률을 바꾼다던가 하는 액션을 취할 수 있었지만 중국 공장의 치명적 단점이라면 현장에서 바로 지시를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 있다면 패턴에 대한 만족도는 거의 달성된 상황이었기에 확연하게 달라진 품질의 테스트 제품을 받은 테스터들은 칭찬일색이었다는 점이었다. “품질이 정말 좋아졌네요.” “이전 샘플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피드백을 바탕으로 좋은 제품이 탄생했네요.” 같은 피드백이 많았다.

완성도가 올라간 샘플에 대한 피드백

하지만 우리는 만족할 수 없었다. 제품의 완성도가 확연하게 좋아졌고 고객들이 좋게 평가해주는 것은 반가운 일이 맞지만 애초에 내가 생각하는 경도와 색상이 구현되지 않았다면 그건 완성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담당자와 수차례 커뮤니케이션을 더 진행하고 색상과 경도에 대한 레퍼런스, 작업 지시서 등 여러번의 자료들이 오고 갔다.

그 후로 약 2번의 샘플을 더 받았고 결국 내가 내린 결정은 “중국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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